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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 (4) - 세계미술거장전

 
 오늘의 목표는 세종문화회관. 그 전에 실패의 쓴잔을 마셨던 영화 관람에 재도전했습니다. 시네마 정동에서 '놈놈놈'을 조조로 봤지요. 많은 분들이 얘기한 것처럼 화면빨이 모든 걸 압도하는 영화였습니다. 보고 나오면서 곰은 "도원이가 뭐가 멋있다고 그 난리냐. 창이가 훨씬 더 멋있던데."라며 궁시렁거렸고 저는 "도원이가 좀 많이 멋지긴 하지만, 죽여도 죽지 않을 태구가 더 맘에 들어."라고 했죠. 오프닝과 추격씬은 정말 잊지 못하겠더군요.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을 졸라서 다시 보러 가야겠습니다'ㅁ'

 그리고 점심은 파이낸스 빌딩 지하, '야쿤 토스트'에서 간단하게. 토스트는 무척이나 간단한데, 그 심플한 맛이 더 오래 남더라고요. 카야라는 녹색 잼은 제 입엔 너무 달아서-_-; 야쿤 커피도 단맛이 강하더군요. 음료 선택을 잘 했으면 더 좋은 한 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도 아침마다 토스트를 해 먹지만, 질린다는 느낌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거든요. 특히 반숙으로 나오는 달걀이 딱 제 취향이었답니다ㅎ

 한여름의 더위를 뚫고 도착한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세계미술거장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곰도 저도 집에서 프린트가 안 되는 바람에 기껏 구해놓은 1,000원 할인권(무려 10%란 말입니다!)을 써먹지 못해서 낙담. 그런데 '플레이 뮤지엄' 전이랑 같이 보면 할인혜택이 있더군요. 워낙 구경을 좋아하는 터라 아무 생각없이 둘 다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사서 들어갔답니다.
이건 올라오면서 찍은 거긴 하지만^^; 내려가는 벽 쪽에는 색색깔의 색연필이 곱게 전시되어 있고,
크고 작은 작가들의 이름도 컬러풀하게 쓰여 있습니다.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판화로 보는 미술의 역사'랄까요. 정식 부제는 '인상파에서 팝아트까지 판화로의 여행'입니다. 마네, 들라크루아, 마티스, 피카소, 달리, 폴록, 워홀, 리히텐슈타인… 대충 기억나는 유명인들이었어요. 이철수식의 판화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 물론 이 분을 폄하하는 건 아니예요. 그렇다고 썩 좋아하지도 않지만요. - 자세한 묘사부터 섬세한 색감까지 '판화'라는 이름이 붙은 거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달까요. 에칭과 드라이포인트는 전자가 부식이라는 과정이 첨가된다 뿐이지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였습니다. 판화라면 이쪽을 생각하기 쉽지만 석판화(리토그래피)도 그 질감이 맘에 들더군요. 얼핏 보면 그냥 그림들과도 구분이 안 갈 정도입니다. 이럴 땐 전문가이신 큰이모님이 새삼 그리워지지만 요즘 부쩍 아프신터라 설명을 부탁드리지 못한 게 아쉬웠달까요. 현대쪽으로 오면 판화에다가 콜라주 기법까지 덧붙여진 것들이 나오지요. 이쪽도 마음에 들더라고요. 꼬맹이들이 한다는 체험학습지도 받아서 이것저것 써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역시 나오면서 봤던,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입니다:)

 그리고는 별관에서 한다는 '플레이 뮤지엄' 전으로! 광화문 지하보도 쪽에 있더군요. 팸플릿에 보니 '다중지능 체험 놀이터'라고 쓰인 게 살짝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씩씩하게 갔습니다'ㅁ' 곰과 함께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데, 앞에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는 직원 분이 "두 분이서만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시더군요. 주위를 둘러보니 말 그대로 애들이 한가득. 보통은 부모님이 애들을 데리고 놀러오는 곳이더라고요. 아니 근데 왜 표를 끊을 땐 아무 얘기도 안 해주셨데┓- 아하하. 멋쩍게 웃어보이며 체험북을 받아서 입장했습니다.

 애들이 바글바글한 곳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긴 애들이 무턱대고 떠드는 게 아니라 다들 놀이에 열중하고 있으니 예뻐보였습니다. 거울에 보이는 선을 따라 걷는다든가, 구슬에 손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본다든가, 자석을 이용해서 모양을 완성한다든가, 그림에 맞춰서 블록을 쌓는다든가 등등. 그야말로 애들이 놀기 좋은, 천국같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다중지능' 중 우리 아이가 어떤 지능에 강하고 또 약한지 알아본다 그러네요. 다중지능?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러고보니 체험북 처음에 '가드너 교수의 이론을 바탕으로~' 운운하는 내용이 보이는군요. 교육학에서 지독하게 나오는 아저씨 중 한 사람입니다=ㅁ= IQ만 가지고는 지능을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언어, 인간친화, 자연친화, 논리수학, 신체운동, 자기성찰, 음악, 공간 등 여덟 개로 지능을 나누어서 강점과 약점을 알아본다 그러네요. 기억이 맞다면야 6*6*5의 입방체, 총 180가지의 지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즘 매일 끼고 사는 게 교육학 이론서라지만 봐도봐도 헷갈려서 말이죠;;

 신기한 것 중 하나는 '마리오네트 춤 따라하기'가 인간친화지능에 들어가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신체운동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체크 문항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놀이를 합니까?'였거든요.
바로 이 녀석 말입니다'ㅁ' 곰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웃음이 나왔답니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있었지요. 이것 역시 인간친화지능에 속하던데 '친구의 기분을 잘 알고 표현합니까?'라는 문항에 체크를 하게 되어있더군요. 저는 마음의 눈으로 본 곰탱이를 그렸고, 곰은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라며 주던데 글쎄요. 올리자니 좀 부끄럽군요. 한 마디, 곰한테는 손이 아니라 발이 있다는 걸 덧붙이고 싶네요.

 광화문까지 갔으니 교보문고에 아니 갈 수 없죠. 가서 만화책 한 권을 잽싸게 계산하고 나왔습니다. 저녁은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바로 눈앞에 곰이 맛집이라고 알아뒀던 <미진>이 보이더군요. 54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집이었지요. 메밀전병과 냉모밀(사실 '메밀국수'가 맞지만, 눈에는 '모밀'이 훨씬 익네요^^;) 을 하나씩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먹었습니다. 이걸로 이 날의 데이트도 즐겁게 마무리지었지요:)

by 玄月 | 2008/08/11 23:17 | 눈도장 찍기 | 트랙백 | 덧글(2)

향가 (5) - 원왕생가

 
classic_4.hwp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遣
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鄕言云報言也)多可攴白遣賜立
誓音深史隱尊衣希仰攴
兩手集刀花乎白良
願往生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當作句而看)
阿邪 此身遣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달하, 이제                       달이 어째서
서방(西方)꺼정 가셔서                  서방(西方)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불(無量壽佛) 전(前)에               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보고(報告)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다짐[誓] 깊으신 존(尊)을 우러러             서원(誓願)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을 도두와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그릴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으, 이 몸을 길이 두고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이루실까 [젛사옵네]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이루실까.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


 문무왕 때에 불가의 도를 닦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은 광덕과 엄장이었다. 두 사람은 좋은 벗으로 항상 약속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극락세계로 가는 사람이 꼭 알리기로 하자."고 하였다. 광덕은 분황사 서쪽에 은거하면서(혹은 황룡사의 서거방에 있었다 하니 어느 말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신 삼는 것으로 업을 삼고 처자를 거느리고 살았다. 엄장은 남악에 암자를 짓고 농사일에 힘쓰면서 지냈다.
 어느 날, 해 그림자가 붉은 빛을 띠고 소나무 그늘에 어둠이 깔릴 때, 엄장의 창 밖에서 "나는 벌써 서방으로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 둘러보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풍악 소리가 나고 빛이 땅까지 뻗쳐 있었다. 그 이튿날 엄장은 광덕이 머물던 곳을 찾아가 보니 광덕은 과연 죽었다. 이에 그는 광덕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장사를 다 마치고 그는 광덕의 아내에게 말하기를 "남편은 이미 죽었으니 이제 나와 같이 사는 것이 어떻소?" 하자, 그 아내가 "좋습니다."고 대답하였다. 드디어 그날 밤 광덕의 집에 머물러 자면서 정을 통하려 하자, 그의 아내가 응하지 않고 하는 말이 "스님께서 정토를 구하는 것은 마치 고기를 잡으러 나무에 오르는 격입니다."고 하였다. 엄장이 놀라면서 말했다. "광덕도 이미 그러했는데 나라고 안 될 것이 있소?"하자, 그녀가 말하기를 "남편은 나와 동거한 지 10여 년이었지만 일찍이 한 자리에 눕지도 않았는데 하물며 추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매일 밤 몸을 단정히 하고 반듯이 앉아서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생각하였습니다. 혹은 16관(중생이 죽어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서 닦는 16가지의 법)을 하여 관이 이루어지면 밝은 달이 문에 들어올 때 그 빛에 올라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정성을 이와 같이 하였으니 서방정토로 안 가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저 천 리를 가는 사람은 그 첫 걸음에 알아볼 수 있는 법인데, 지금 스님의 관은 동쪽으로 갈 수는 있을지언정 서방정토로는 갈 수 없겠습니다."고 하였다.
 엄장은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나 곧 원효법사의 거처로 찾아가 정성껏 득도의 길을 물었다. 원효는 정관법을 지어서 권유하였다. 엄장이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뉘우쳐 한마음으로 관(미망을 깨치고 진리를 통달하는 것)을 닦아서 또한 서방 극락세계로 올라갔다. 정관법은 원효대사의 본전과 『해동고승전』 중에 있다. 광덕의 아내는 분황사의 종이었는데 바로 관음보살 십구응신 중의 하나다. 일찍이 광덕은 이와 같은 노래를 불렀다.
-『삼국유사(三國遺事)』卷5, 감통(感通), 광덕 엄장

 <원왕생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 줄 '月下伊底亦(월하이저역)'의 해독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과연 작자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지요.

 먼저 첫 줄의 해독입니다. 향가는 향찰로 표기된 것이며 한자로 음 또는 뜻을 표기하지요. 따라서 어디에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해독에 차이가 나게 됩니다. 여기서는 '月下伊 / 底亦'으로 끊는 견해와 '月下 / 伊底亦'으로 끊는 견해가 있지요.

 전자는 다시 몇 가지의 뜻으로 세분화됩니다.
 첫째로 '달의 아래'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下伊(하이)'는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처격 '-해'로 봅니다. 여기 사이시옷을 덧붙여서 현대어의 '-의'로 해독하지요. '底亦(저역)'은 '아래, 밑'이라는 '底(저)'의 뜻에 '亦(역)'을 음으로 읽어 '믿예'로 보고요.
 둘째로는 '下伊(하이)'를 '아리', 즉 '아래'로 읽고 '底亦(저역)'을 '저기'로 읽고 있습니다. '또한'이라는 뜻의 '亦(역)'이 어째서 '기'에 가까운 음으로 읽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_-;
 셋째로 '月下伊(월하이)'를 '다라리'로 읽는 것입니다. 중세국어에서는 쓰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발음나는 대로 붙여쓰는, 이른바 '이어적기'를 할 수 있었거든요. (예를 들자면 '손이'를 '소니'로 쓰는 것처럼요. 근대국어, 즉 개화기까지의 한글 문헌을 읽는 게 힘든 것도 이와 같은 표기상의 차이에서 오는 이유가 큽니다) 그래서 앞부분 전체를 '달이'로 읽고, '底亦(저역)'을 '엇뎨역', 즉 '어째서'로 풀이하지요. 중간에 왜 '엇'이 끼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후자의 경우 '月下 / 伊底亦'이라 끊고 '달하 이뎨', 즉 '달이여 이제'라고 해독하지요. '下(하)'는 중세국어에서 지금의 '-아'와 비슷하게 쓰였던 말입니다. 부르는 말 뒤에 붙는다는 건 똑같지만(이를 '호격 조사'라고 하지요) 높임의 뜻이 더해진다는 게 조금 다릅니다. 이를테면 용비어천가에서 '님금하 아라쇼셔'(임금이시여, 아십시오)와 같이 쓰이는 것처럼요. 그리고 '伊底亦(이저역)'은 '이제'로 간주합니다. 즉 서방정토 왕생의 염원을 직접 달에게 호소하는 노래, 라는 근거를 어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쪽이 맞는지는 당대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입니다만, '기원'이라는 성격에서 그리고 '호소'라는 정서에서 이 편이 좀 더 묘미가 있다고 보이네요.

 작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일부의 향가처럼 누가 불렀는지 모른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적 화자가 달라짐에 따라 해석의 양상이,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정토왕생을 갈구하는 염원의 성격, 기원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정서의 질 등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여기에 관해서 많은 얘기가 있었지요. 대여섯 가지의 견해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발단은 산문기록의 끝 문장을 어떻게 끊어 읽느냐였지요. 원문은 '其婦乃芬皇寺之婢盖十九應身之一德嘗有歌云', 즉 위의 설화에서 밑줄로 표시된 부분입니다. (편의상 一과 德 사이를 끊어 읽었습니다. 물론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德(덕)'을 앞쪽에 붙여 읽으면 광덕의 처가 노래를 지은 것이 되며, 뒤쪽에 붙여 읽으면 광덕이 노래를 지은 것이 됩니다. 여기에 '有歌(유가)'가 과연 '作歌(작가)'와 같은 뜻인가 하는 논란이 추가됩니다. 광덕의 처나 광덕이 노래를 지었다는 쪽에서는 '有歌(유가)'가 '作歌(작가)'의 관례적 표현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작자를 모른다는 쪽에서는 같은 뜻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요.

 여기에 9줄의 '此身(차신)'의 문제도 추가됩니다. 과연 '이 몸'은 누구일까요? 광덕의 처든 광덕이든 지은이가 분명히 있다는 쪽에서는 지은이 자신이라고 말하지요. 반면 작자를 모른다는 쪽에는 극락 왕생을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몸'이 될 수 있다는, 시적 자아의 집단성을 얘기합니다. 이런 논의 과정 속에서 광덕의 처는 보살의 화신이니 새삼 극락을 바랄 수 없으며, 표제 역시 <광덕·엄장>이라는 점에서 광덕이 지었다는, 즉 개인의 창작물이라는 설로 정리됩니다. 그리고 작자를 모른다는 쪽은 집단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작품을 보고 있고요.

 학계의 주류는 <원왕생가>를 광덕의 작품으로 보며, 한 개인의 신앙적 발원을 형상화한 개인적 서정시라고 하지요. 특히 설화 속에서 '달'이 나오고 있으니 노래 속의 달 역시 그가 수행하던 실제 상황에서 보고 있던 달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험의 반영이랄까요. 특히 이 '달'은 이 세상의 나와 극락정토의 아미타불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의 기원 대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합니다. 반면 작자를 모른다는 쪽은 찬불가의 성격상 집단적 상상력이 표현된 것이라고 보지요. 특정 개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보편적·집단적 기원이라고 볼 때- 당대 삶의 고통을(기록은 신라 문무왕대, 라고 나와있습니다. 백제, 고구려, 그리고 당과의 전쟁까지 전란으로 가득한 시기였죠) 정토 왕생의 염원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당대 사회의 민중의 바람이 투영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종교쪽으로 치우치는 부분이 나오니 역시 가방끈이 짧은 게 또 표시가 나는군요. 음, 그치만 정말 궁금한 건 왜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으면서 10년 동안이나 광덕과 그 부인은 같이 살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엄장의 모습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군요'ㅁ'

 덧. 역시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설화 역시 이와 유사한 모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를 이루기를 바라는 두 친구 - 각각 열심히 수도함 - 한 친구의 득도 - 다른 이의 득도'라는 전체 줄거리 안에 두 친구의 수도 정도를 알아보는 여인이 등장하게 되지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경우 부인이 아니라 야심한 밤에 한 여인이 찾아오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원효산설화>에서도 원효와 의상에게 비슷한 일이 있지요.

 다시 덧. 양주동 선생 해독의 [젛사옵네]는 원문에는 없지만 해독을 하며 집어넣은 것이라 합니다. 풀이하자면 나를 버리고 48대원을 이루실까 두렵습니다, 정도겠네요. 하긴 이 모진 세상에 나만 버려두고 극락왕생을 하시겠다니 충분히 두려울 법하지요.

 마지막 덧. 김완진 선생의 해독이 어학적으로는 더 근거가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양주동 선생은 영문학 전공이고 김완진 선생은 국어학 전공이니 일단 기본 바탕에서 차이가 있지요. 어느 순간부터 교과서에서도 김완진 선생의 해독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물론 영문학 전공이면서도 이 정도까지 해독을 하신 양주동 선생은 정말 국보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이 분이 향가 해독에 뛰어든 것도 우리나라 옛 노래인데 일본인(소창진평. 오구라 신페이라고도 하지요)이 먼저 해독한 거에 화르륵 불타오르셔서 그랬다니 충분히 재미있으신 분이지요. 갹설하고, 그렇지만 김완진 선생의 해독에는 약점이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4-5줄에 나오는 '攴'자 문제입니다. 목판으로 인쇄할 때라 '支'자가 떨어져나가 '攴'자로 되었으며, 이는 앞의 글자를 특정하게 음으로 혹은 뜻으로 읽으라고 지정하는 '지정문자'라는 설이지요. 물론 원전을 바꾸어 해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지정문자라고 본다고 해도 음/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습니다.

by 玄月 | 2008/08/11 00:22 | 맛있는 공부 | 트랙백 | 덧글(1)

서울에서 사고, 읽은 책들

 
 올라가는 길에 손에 들려있던 <뫼신 사냥꾼> 상권. 빨리 절판되고 재판이 나오지 않는 장르문학의 특성상, 그리고 하권만 책꽂이에 꽂혀있는 불쌍한 꼴을 더 보기 싫어서 냉큼 사버렸다. 속도감 있게 글을 읽기는 좋은 편. 리메이크 되기 전의 <흑호>도 보긴 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책창고'에서 곰에게 강탈했던 <신문>. 빛깔 있는 책들 시리즈 중의 하나더라. 작가의 말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원고 내용을 미리 보여달라는 걸 거절했더니 동아일보는 자료 사용을 허락할 수 없다 그러고 조선일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피식거리면서 찔리는 게 많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역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책 내용 자체는 개론서 수준. 알고 있던 사실을 재정리하는 정도였다.
 또 하나 집어들었던 건 <춘향의 딸들, 한국 여성의 반쪽짜리 계보학>. 이 녀석은 책세상 문고 중 하나. 춘향전의 텍스트 변천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돈과 사랑에 얽힌 삼각관계 - 대표적인 게 '이수일과 심순애' - 나 근대와 정절의 문제로 해석할 수 있는 <무정>과 같은 책들도 다루고 있었다. '해방 후 근대화의 아이콘'에서 다루고 있던 하녀의 이미지도 꽤나 흥미로웠고, 마무리에 소략하게나마 언급한 여귀 공포영화도 나쁘진 않았지. 다양한 내용을 살펴보고 호기심을 일깨워준 것도 좋았지만 다섯 개의 주제 중 두어 개에만 집중하는 것이 '근대 대중물의 여주인공들이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되었고, 어떤 의미들을 유포시켰는가를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라는 취지에 좀 더 부합하지 않았을까.
 저녁에는 외삼촌 집에 갑작스레 가게 되어, 가까운 서점으로 들어갔다. 빈 손으로 가긴 좀 그래서. 쥐스킨트와 타샤 튜더를 한 권씩 집어들고 내 몫으로는 <고바우 김성환의 판자촌 이야기>를 꿀꺽. 5-60년대의 이야기가 한가득 펼쳐져 있더라. 중간중간에 고바우 영감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고. 예전엔 이렇게 살았단다, 라고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면 괜찮을 법한 책.

 둘째 날은 종로에서 헤매고 다녔으니 종로 영풍문고가 빠질 수 없지. 피서를 겸해서 양손에 가득 책을 싸들고 나왔다. 이전부터 읽어오던 <소년탐정 김전일> 14권, 캐릭터 팝에 낚여서 계속 사고 있는 <가면의 메이드가이> 5권, 변화가 있을 듯하면서 여전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노다메 칸타빌레> 20권… 곰 선물로 <크로스 게임>도 9-10권을 샀으니 나름 만화 시장에도 공헌하고 있다고 말하고픈^^; 그리고 곰 선물로는 마종기의 시집을 한 권 더 샀다.
 서해 역사문고 시리즈인 <계집은 어떻게 여성이 되었나>도 한 권. 근대-신여성이라는 주제는 꽤나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전날 샀던 책세상 문고보다는 이 책이 더 정리가 잘 되어 있더라. <춘향의 딸들…>은 대중 문화 속에서 일종의 주제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책은 신여성부터 여성 노동자들까지 통시적으로 간단하게 훑어볼 수 있었으니까.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도 오랜만.
 그리고 곰한테서 <라크리모사>를 뜯어냈다. 역시나 하뎃경의 책.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판타지가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재밌는 책이었다. 한두 번은 더 읽어야 제대로 된 감상이 나올 듯. 사실 예언에 나오는 세 사람이라는 게 아직도 누군지 헷갈린다-_-;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는 사주고 싶었다면서 주더라. 표제시를 시집이 아닌, 다른 어떤 곳에서 보고 맘에 들어 편지에 적어줬더니 본인도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 이웃을, 낮은 곳을 배려하는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집이었다.

 셋째 날은 대학로에서 놀았다.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대학로 한 귀퉁이의 서점이 눈에 보이길래 들어가봤더니, 생각보다 훨씬 좋은 보물창고더라.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음아트' 말이다. 헌책과 새책이 묘한 공존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맘에 더 들었는지도. 가장 좋았던 건 웬만한 대형 서점보다 문지의 시집들이 훨씬 잘 갖추어져 있다는 거. 곰이 들고 있던 시집 한 권이랑 상뻬의 그림책 하나를 집어들어서 계산했다.
 내 몫으로는 <바이바이 베스파>.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든 묘한 책이었다. 피리님의 글도 있었고, 표지가 맘에 들어서 일단 지르긴 했는데- "혹시 어른이 되려는 거니?"라는, 책 뒤의 한 마디가 이렇게까지 오래 남을 줄이야. 집에 가져가서 동생 녀석에게도 꼭 보여줘야겠다.

 넷째 날의 주무대는 광화문. 교보문고를 구경하다가 빼먹고 곰에게 주지 않았던 <크로스 게임> 8권을 집어들고, 슬그머니 <바텐더> 3권도 함께. <신의 물방울>도 습관처럼 사고는 있지만 <바텐더> 쪽이 좀 더 취향에 맞는 듯하다. 물론 과거가 있는 남자, 라는 것도 독특한 컨셉은 아니지만 대결 구도보다는 좀 덜하단 말이지. 여튼 단골 바를 하나 만들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한 만화. 지난 겨울에 마셨던 생애 최고의 피나콜라다가 다시 생각나 입속을 맴돈다.

 명동엔 서점 따위 있을 리가 없고-_-; 여섯째 날은 센트럴을 헤맸지. 그리고 역시나 발길이 닿은 곳은 영풍문고. <바텐더> 4-5권과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를 곰한테 맡겨버렸다. 헤헷. 정혜윤의 전작이라는 <침대와 책>은 아직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쪽은 대담 형식인 만큼 밀집되어 있지는 않다는 느낌. 저자의 주관이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는, '책'을 주제로 한 인터뷰 정도라면 괜찮으려나. 11명의 매혹적인 독서가들이라 말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내가 만난 책과 사람'일 듯.

 일곱째 날엔 다시 광화문 교보로. 문구류가 지금과 같이 크게 자리잡기 전, 책의 세계는 이렇게 넓은 거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서점인 만큼 여기 느끼는 감정은 각별하다. 뱀발은 그만 붙이고- 자리를 깔고 앉아 <낙원>을 정신없이 읽었다. <모방범> 이후 한참 주가가 오른 미야베 미유키. 전작에 등장했던 르포라이터 시게코가 다시금 사건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남는 결말의 씁쓸함. 현대 사회의 병폐든 뭐든 일단 성악설 부터 믿게 되어버리는, 그런 느낌.
 <바텐더> 6-7권과 시집 두 권을 집어들고 나섰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는 황동규의 비교적 근작 시집. 그래도 벌써 5년이 지났다만. 죽음이라는 모티브는 여전했고, 묘하게 연작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랑 노래'들도 마음에 들었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김선우의 첫 시집. 시인이면서 시가 아닌 다른 작품으로 알게 된 작가라 그런지 시집을 집어들면서도 좀 낯선 기분이었다. '여류' 운운하는 말은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성'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책을 지고 학교로 내려온다고 온 몸이 쑤시는구나. 게다가 비어버린 지갑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 남은 방학 기간은 초 긴축재정이다ㅠㅠ

by 玄月 | 2008/08/09 14:11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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