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9일
20세기 한국소설 37 - 조성기, 이문열, 최시한
# 조성기 : 통도사 가는 길
# 이문열 : 하구,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최시한 : 반성문을 쓰는 시간
워낙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난 뒤라 가물가물하네요;; 사실 <통도사 가는 길>은 읽고 나서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여로'에 초점을 맞추면 무언가를 더 읽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저 흘려보냈습니다.
이문열은 문학으로도 그 이외의 발언으로도 유명한 작가지요. 개인적으로는 문학 이외의 발언도 딱히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고, 그의 전반적인 소설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전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러고보면 이문열의 <삼국지>는 꽤나 좋아했었고 그 때문에 이런저런 장/단편을 읽게 되었지만 <선택> 이후로는 그럴 마음도 없었네요. 덕분에 꽤 오랜만에 그의 책을 잡은 셈입니다.
<하구>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모래를 파는 형의 일을 돕지요. 형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과 공부를 해야 되는데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스트레스의 복합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 모래를 파는 사업이 기우는 모습과 거기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도 보이고요.
<금시조>는 예술가의 이야기입니다. 藝와 道는 하나라고 보는 석담과 그에 반발하는 고죽. 사제간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두 사람을 통해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려냈지요. 고죽은 석담의 말년에 글씨에서 금시조가 솟아오르고 향상이 노닌들 무슨 소용이겠냐며 문하를 박차고 나갑니다. 거기에는 藝가 道에 앞선다고 믿는 고죽의 관점에, 그의 출생 및 관점을 좋지 않게 봤던 석담의 냉대가 한몫 합니다. 그러나 떠돌이생활에 지칠 무렵, 절의 벽화에서 금시조를 보고는 스승을 이해하지요. 물론 석담은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만. 그리고 다시금 藝와 道에 몰두하는 고죽. 그러나 죽을 때가 가까울 무렵, 자신의 서화를 거두어들여 엄정하게 바라보고는 남겨둘만한 것이 없자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 때 석담에게는 동양적 이념미의 상징이자 고죽에게는 독자적인 미적 성취인 금시조를 보았다고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날 저녁 고죽이 숨을 거두었다는 마지막 문장. 예술가의 자기 완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레고리적 수법을 잘 사용했지만 역시나 부정적인 전망으로 인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비교하기도 했었죠. 학급 내에서의 폭력과 그 해결과정을 보며 '민중'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황석영과 그를 불신하는 이문열. 하지만 요즘 가장 마음이 가는 건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던걸요. 아마 비가시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지도요. 사실 <아우를 위하여>의 모습은 요즘의 학교에서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현실을 그리면서도, 그 이상이 반영된 현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달까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그려내는 배경 때문인지 확실하게 '과거'라는 느낌이 들고요. 반면 <우상의 눈물>은 공포물이 아닌데도 읽고나면 괜히 등뒤가 오싹해지고,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어딘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더군요.
최시한의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연작 중 일부입니다. <허생전을 읽는 시간>에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요. 고전인 '허생전'을 읽어나가며 선생님과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의 대립과 화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했던 왜냐 선생은 전교조 활동으로 쫓겨나지요.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축제를 계획하지만 비밀 집회로 몰리면서 정학을 당하고 그 동안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지요. 반성문을 쓰게 된 경위와,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자신들의 일을 돌아보며 더 이상은 반성문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이야기라서 그런지 계속 눈이 가네요.
# 이문열 : 하구,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최시한 : 반성문을 쓰는 시간
워낙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난 뒤라 가물가물하네요;; 사실 <통도사 가는 길>은 읽고 나서도 별다른 느낌은 없었습니다. '여로'에 초점을 맞추면 무언가를 더 읽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저 흘려보냈습니다.
이문열은 문학으로도 그 이외의 발언으로도 유명한 작가지요. 개인적으로는 문학 이외의 발언도 딱히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고, 그의 전반적인 소설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전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러고보면 이문열의 <삼국지>는 꽤나 좋아했었고 그 때문에 이런저런 장/단편을 읽게 되었지만 <선택> 이후로는 그럴 마음도 없었네요. 덕분에 꽤 오랜만에 그의 책을 잡은 셈입니다.
<하구>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검정고시를 치고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모래를 파는 형의 일을 돕지요. 형에게 짐이 된다는 부담감과 공부를 해야 되는데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스트레스의 복합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 모래를 파는 사업이 기우는 모습과 거기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도 보이고요.
<금시조>는 예술가의 이야기입니다. 藝와 道는 하나라고 보는 석담과 그에 반발하는 고죽. 사제간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두 사람을 통해 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려냈지요. 고죽은 석담의 말년에 글씨에서 금시조가 솟아오르고 향상이 노닌들 무슨 소용이겠냐며 문하를 박차고 나갑니다. 거기에는 藝가 道에 앞선다고 믿는 고죽의 관점에, 그의 출생 및 관점을 좋지 않게 봤던 석담의 냉대가 한몫 합니다. 그러나 떠돌이생활에 지칠 무렵, 절의 벽화에서 금시조를 보고는 스승을 이해하지요. 물론 석담은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만. 그리고 다시금 藝와 道에 몰두하는 고죽. 그러나 죽을 때가 가까울 무렵, 자신의 서화를 거두어들여 엄정하게 바라보고는 남겨둘만한 것이 없자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 때 석담에게는 동양적 이념미의 상징이자 고죽에게는 독자적인 미적 성취인 금시조를 보았다고 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날 저녁 고죽이 숨을 거두었다는 마지막 문장. 예술가의 자기 완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했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지금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알레고리적 수법을 잘 사용했지만 역시나 부정적인 전망으로 인해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비교하기도 했었죠. 학급 내에서의 폭력과 그 해결과정을 보며 '민중'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황석영과 그를 불신하는 이문열. 하지만 요즘 가장 마음이 가는 건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이던걸요. 아마 비가시적인 힘의 작용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지도요. 사실 <아우를 위하여>의 모습은 요즘의 학교에서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현실을 그리면서도, 그 이상이 반영된 현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달까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그려내는 배경 때문인지 확실하게 '과거'라는 느낌이 들고요. 반면 <우상의 눈물>은 공포물이 아닌데도 읽고나면 괜히 등뒤가 오싹해지고,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어딘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더군요.
최시한의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연작 중 일부입니다. <허생전을 읽는 시간>에서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요. 고전인 '허생전'을 읽어나가며 선생님과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의 대립과 화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면을 생각해보게 했던 왜냐 선생은 전교조 활동으로 쫓겨나지요.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축제를 계획하지만 비밀 집회로 몰리면서 정학을 당하고 그 동안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지요. 반성문을 쓰게 된 경위와,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자신들의 일을 돌아보며 더 이상은 반성문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학교 이야기라서 그런지 계속 눈이 가네요.
# by | 2008/10/29 21:52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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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의 글은 예전에 열심히 읽었어요. 제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은사이시기도 했고, 저희 학교 국문과 교수님이시기도 했거든요. 수업을 무척 깐깐하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10년 동안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의 첫 문장을 완성한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 될 거라는 말씀도 하셨던 것도 생각나고요. 다시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최시한의 글은 생각할거리가 꽤나 많지요. 특히 저도 국어교육과에 있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반성하게 되었지요. 직접 수업을 들으셨다니 부러운걸요:)
읽으려고 쌓아둔 책이, 모던타임스, 학벌사회(...), 오늘날 연대란 무엇인가, 교육과 사회학.
거기다 공부하려고 적어둔 사람 이름이 듀이, 비고츠키, 롤즈, 아도르노, 바쿠닌, 하버마스, 루소, 부르디외, 알튀세르, 로자.
이걸 다 끝내면 혼불을 읽어야 ㅠㅠㅠㅠ <읽을 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