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2일
千년의 우리소설 1 - 사랑의 죽음
<심생전>을 찾는데 학교에는 없어서- 인터넷 서점을 뒤지다보니 '千년의 우리 소설'이라는 게 있더군요. 냉큼 신청해서 받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千년의 우리 소설'은 돌베개에서 기획한 고소설 시리즈로, 9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소설을 다루고 있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하네요. 고소설에는 수많은 이본이 있는데 이를 대조하는 정본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대신 두루 망라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현대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작품을 가려 뽑아서 고소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네요.
첫 번째 권은 '사랑의 죽음'이라는 부제 아래 네 편의 소설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먼저 <심생전>. 18세기 유려한 소품문을 썼던 이옥의 작품이지요. 수능을 치던 첫 해에 시험지에서 지문을 보고 당혹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섬세한 결을 잘 살리는 작가는 여성인가 오해할 정도로 여인의 내면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광통교를 지나며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난 심생은 그녀를 미행했다가 매일 밤 그녀의 집에 찾아갑니다. 뭐 어떻게 해야겠다기보다는 요즘으로 치면 순진한(?) 스토커랄까요(쓰고보니 무언가 형용모순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입니다). 여인 역시 낌새는 채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를 고민하며 벽을 치거나, 한숨을 쉬고, 자물쇠를 지르는 모습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은 심생을 방으로 들입니다. 무남독녀라는 처지, 양반가와 중인의 집안이라는 신분차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였지요. 하지만 꿈같은 시간은 잠시, 심생의 집에서 이를 두고볼리가 없지요. 이후 심생은 얌전히 글공부만 해야 했고, 그러는동안 여인은 죽고 맙니다. 심생 역시 벼슬길에 나가지만 일찍 죽고 말지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할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같은 결말을 보고 나니 씁쓸하네요.
그 다음은 <운영전>입니다. 몇 안 되는 비극 염정소설 중 잘 알려진 작품이지요. 특히 액자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고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이라 이채로웠습니다. 또, 여성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했지요. 보통 고소설은 전지적 시점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운영전>은 운영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있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에 있었던 일은 김 진사가 이어받고 있습니다. 운영과 같이 안평대군의 궁녀이면서 운영을 가엾게 여겨 그녀와 김 진사의 만남을 도우려는 자란이나 첫눈에 사랑하게 되어버린 김 진사의 애정 전달자가 되어야 하는 무녀 등 조연들도 각기 개성있게 형상화되어 있었고요.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궁녀들의 심리에 공감이 가더군요. 참, 그리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점인데- 안평대군도 꽤나 측은했습니다. 궁녀 여럿 중에 하나일 뿐이고 둘이 죽고 못 산다면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평대군 역시 운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차마 손도 못 대고 애지중지 길렀는데 다른 녀석이 채간다고 하면 곱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자연스런 본성까지 막아버린 것은 역시나 못마땅했지만요.
그리고 <위경천전>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배경으로 취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꿈결인듯 들어간 방에서 위생은 소숙방과 '어른의 잠'을 잡니다. 그녀는 재상 가문의 금지옥엽이지요. 스캔들이 날 게 두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상사병에 걸린 위생은 결혼으로 인해 회생하게 되지요. 얼마간 잘 산다 싶었는데 별안간 먼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네요. 위생은 명을 받고 출정하게 되지만 결국 상사병이 재발하여 죽어서 돌아오고, 그걸 본 소숙방은 따라서 목숨을 끊습니다. 결말을 보면서는 뭐랄까, 그야말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에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마지막은 임방의 작품 <옥소선전>입니다. 조선 성종, 평안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옥소선은 기생이지만 그 재주가 뛰어납니다. 마침 나이가 맞는 사또의 아들과 천생연분으로 잘 어울린달까요. 하지만 사또는 임기가 끝나면 새로운 부임지로 가야되지요. 내직으로 들어가게 된 사또는 기생을 데려갈 수도 없고 하니 아들에게 묻습니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모습과는 달리 아들은 그까짓 이별이 뭐 대수냐며 헤어지지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생각을 했는데 사실 너무 어려서 이별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것이더군요. 과거 공부를 위해 절에 틀어박혀있던 어느 날, 그는 눈 쌓인 밤에 달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는 소선을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도련님이 뭘 알까요. 거지꼴로 겨우 도착하지만 소선의 어미는 그를 박대합니다. 다행히 그가 예전에 도와줬던 이방 덕택에 소선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지요. 지금의 사또에게도 예쁨을 받고 있지만 소선에게도 그는 첫사랑. 게다가 자신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 먼 길을 와 천민의 차림으로 눈을 쓸고 있는 그를 보고는 야반도주합니다. 산 속에 숨어 살며 소선은 자신이 일을 하고 책을 구해서 그에게는 과거 공부를 시키지요. 이쯤 되면 결말은 뻔하지 않나요. 과거에 급제하고, 소선은 내조를 인정받아 그의 정부인이 됩니다. 얼핏 <춘향전>과 비슷하게도 보였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좀 더 능동적이지요. 특히 사또의 아들 -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없다지요; - 이 불현듯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거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나오는 '달밤의 메밀밭'의 서정과도 견줄만하더라고요.
덕분에 몰랐던 작품들 역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애정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김시습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건 좀 의아했지만 - 전기(傳奇)소설에서나 나오려나요. 아니면 <금오신화>는 그 자체로 따로 다루려나요. 16권 예정이라는 시리즈가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 말예요. 어쨌든 다음 권엔 또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다려집니다.
덧. 그러고보니 책을 다 읽고 반납까지 해버렸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되네요. 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그런지 계속 글이 밀리고 있어요. 좀 더 부지런해져야 될 거 같긴 한데, 일단 다음 주까지는 이 상태로;;;;
첫 번째 권은 '사랑의 죽음'이라는 부제 아래 네 편의 소설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먼저 <심생전>. 18세기 유려한 소품문을 썼던 이옥의 작품이지요. 수능을 치던 첫 해에 시험지에서 지문을 보고 당혹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섬세한 결을 잘 살리는 작가는 여성인가 오해할 정도로 여인의 내면 심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광통교를 지나며 마음에 드는 여인을 만난 심생은 그녀를 미행했다가 매일 밤 그녀의 집에 찾아갑니다. 뭐 어떻게 해야겠다기보다는 요즘으로 치면 순진한(?) 스토커랄까요(쓰고보니 무언가 형용모순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입니다). 여인 역시 낌새는 채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를 고민하며 벽을 치거나, 한숨을 쉬고, 자물쇠를 지르는 모습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은 심생을 방으로 들입니다. 무남독녀라는 처지, 양반가와 중인의 집안이라는 신분차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였지요. 하지만 꿈같은 시간은 잠시, 심생의 집에서 이를 두고볼리가 없지요. 이후 심생은 얌전히 글공부만 해야 했고, 그러는동안 여인은 죽고 맙니다. 심생 역시 벼슬길에 나가지만 일찍 죽고 말지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할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 같은 결말을 보고 나니 씁쓸하네요.
그 다음은 <운영전>입니다. 몇 안 되는 비극 염정소설 중 잘 알려진 작품이지요. 특히 액자소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고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구성이라 이채로웠습니다. 또, 여성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했지요. 보통 고소설은 전지적 시점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운영전>은 운영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하고 있으며 그녀의 죽음 이후에 있었던 일은 김 진사가 이어받고 있습니다. 운영과 같이 안평대군의 궁녀이면서 운영을 가엾게 여겨 그녀와 김 진사의 만남을 도우려는 자란이나 첫눈에 사랑하게 되어버린 김 진사의 애정 전달자가 되어야 하는 무녀 등 조연들도 각기 개성있게 형상화되어 있었고요.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 궁녀들의 심리에 공감이 가더군요. 참, 그리고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점인데- 안평대군도 꽤나 측은했습니다. 궁녀 여럿 중에 하나일 뿐이고 둘이 죽고 못 산다면 보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평대군 역시 운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차마 손도 못 대고 애지중지 길렀는데 다른 녀석이 채간다고 하면 곱게 보이지는 않겠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자연스런 본성까지 막아버린 것은 역시나 못마땅했지만요.
그리고 <위경천전>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중국을 배경으로 취하고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다가 꿈결인듯 들어간 방에서 위생은 소숙방과 '어른의 잠'을 잡니다. 그녀는 재상 가문의 금지옥엽이지요. 스캔들이 날 게 두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상사병에 걸린 위생은 결혼으로 인해 회생하게 되지요. 얼마간 잘 산다 싶었는데 별안간 먼 조선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네요. 위생은 명을 받고 출정하게 되지만 결국 상사병이 재발하여 죽어서 돌아오고, 그걸 본 소숙방은 따라서 목숨을 끊습니다. 결말을 보면서는 뭐랄까, 그야말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에 영향을 미친 전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마지막은 임방의 작품 <옥소선전>입니다. 조선 성종, 평안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옥소선은 기생이지만 그 재주가 뛰어납니다. 마침 나이가 맞는 사또의 아들과 천생연분으로 잘 어울린달까요. 하지만 사또는 임기가 끝나면 새로운 부임지로 가야되지요. 내직으로 들어가게 된 사또는 기생을 데려갈 수도 없고 하니 아들에게 묻습니다.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모습과는 달리 아들은 그까짓 이별이 뭐 대수냐며 헤어지지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생각을 했는데 사실 너무 어려서 이별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것이더군요. 과거 공부를 위해 절에 틀어박혀있던 어느 날, 그는 눈 쌓인 밤에 달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는 소선을 찾아 먼 길을 떠납니다. 손 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도련님이 뭘 알까요. 거지꼴로 겨우 도착하지만 소선의 어미는 그를 박대합니다. 다행히 그가 예전에 도와줬던 이방 덕택에 소선을 먼발치에서 보게 되지요. 지금의 사또에게도 예쁨을 받고 있지만 소선에게도 그는 첫사랑. 게다가 자신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 먼 길을 와 천민의 차림으로 눈을 쓸고 있는 그를 보고는 야반도주합니다. 산 속에 숨어 살며 소선은 자신이 일을 하고 책을 구해서 그에게는 과거 공부를 시키지요. 이쯤 되면 결말은 뻔하지 않나요. 과거에 급제하고, 소선은 내조를 인정받아 그의 정부인이 됩니다. 얼핏 <춘향전>과 비슷하게도 보였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좀 더 능동적이지요. 특히 사또의 아들 -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없다지요; - 이 불현듯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거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나오는 '달밤의 메밀밭'의 서정과도 견줄만하더라고요.
덕분에 몰랐던 작품들 역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애정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김시습의 작품들이 보이지 않는 건 좀 의아했지만 - 전기(傳奇)소설에서나 나오려나요. 아니면 <금오신화>는 그 자체로 따로 다루려나요. 16권 예정이라는 시리즈가 아직 완결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 말예요. 어쨌든 다음 권엔 또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다려집니다.
덧. 그러고보니 책을 다 읽고 반납까지 해버렸는데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되네요. 요즘 이래저래 바빠서 그런지 계속 글이 밀리고 있어요. 좀 더 부지런해져야 될 거 같긴 한데, 일단 다음 주까지는 이 상태로;;;;
# by | 2008/11/02 23:09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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