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루스 로그인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집에서의 시간을 고이 묻어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터미널에서 멍청하게 앉아 기다리다가 읽을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빼꼼 고개를 내미는 파란 돈 한 장. 좀 발랄하게 읽을 책 없을까 하는 생각에 서점에 들어갔었지만 결국 손에 들려있는 건 <엄마를 부탁해>. '엄마'라는 말을 보니 아까 전에 "빠이빠이. 다음 달에 봐요오~" 말하고 나온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사실 신경숙의 소설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읽을 때마다 어느새 책 속의 그녀들에게 동화되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곤 했으니. 그런데 <엄마를 부탁해>는 좀 달랐다. 읽으면서 가슴이 아프고, 가끔씩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게 하는 힘이 있었달까.

 엄마가 사라졌다. 아버지의 생신이라고 같이 올라오시던 서울길,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것이다. 가족들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엄마를 찾아나선다. 전단지에 넣을 사진을 찾다보니 최근의 엄마 사진이 없다는 당혹감부터 두 분이서 오실 수 있다는 말에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은 것, 그리고 하나씩 떠오르는 자책들.
 처음에는 엄마랑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다. 아니, 그걸 딸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행동의, 감정의 주체는 큰딸 지헌이었지만 '나'가 아닌 '너'라고 나오는 대명사들은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를 닮아있었다. 다음은 아들의 시선, 혹은 아들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그는 깨달았다. 엄마는 그가 살았던 동네들을 돌아다닌걸. 하나씩 되살아나는 과거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를 찾는 시선은 이제 아버지에게로 옮겨간다. 살을 맞대고 살았으면서도 잘 몰랐던 그녀에 대한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당신'이라는 지칭어는, 큰딸에게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고 하는 목소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간극을 좁힌다. 이번에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 둘째 딸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하며 누구한테랄 것 없이 얘기를 하는 엄마는 엄마면서, 또한 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그녀가 '엄마'니까 흔히 잊고 사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지.
 그리고는 다시 큰딸의 목소리로 돌아간다. 그녀가 읽어내려가는 여동생의 편지.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라는 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왜 그리 눈물겹던지. 피에타상을 보고 돌아나오며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흘려버린 한 마디가 자꾸 가슴에 남더라. 흔한 얘기, 뻔한 신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한 것에서 오는 공감, 그리고 그로 인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은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한다.

by 玄月 | 2008/11/11 11:10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azureciel.egloos.com/tb/472398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