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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집에서의 시간을 고이 묻어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터미널에서 멍청하게 앉아 기다리다가 읽을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보니 빼꼼 고개를 내미는 파란 돈 한 장. 좀 발랄하게 읽을 책 없을까 하는 생각에 서점에 들어갔었지만 결국 손에 들려있는 건 <엄마를 부탁해>. '엄마'라는 말을 보니 아까 전에 "빠이빠이. 다음 달에 봐요오~" 말하고 나온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사실 신경숙의 소설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읽을 때마다 어느새 책 속의 그녀들에게 동화되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한없이 느려지곤 했으니. 그런데 <엄마를 부탁해>는 좀 달랐다. 읽으면서 가슴이 아프고, 가끔씩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면서도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게 하는 힘이 있었달까.

 엄마가 사라졌다. 아버지의 생신이라고 같이 올라오시던 서울길,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것이다. 가족들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엄마를 찾아나선다. 전단지에 넣을 사진을 찾다보니 최근의 엄마 사진이 없다는 당혹감부터 두 분이서 오실 수 있다는 말에 아무도 마중을 나가지 않은 것, 그리고 하나씩 떠오르는 자책들.
 처음에는 엄마랑 가장 가깝다고도 할 수 있는 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다. 아니, 그걸 딸의 시선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행동의, 감정의 주체는 큰딸 지헌이었지만 '나'가 아닌 '너'라고 나오는 대명사들은 그저 따뜻하게 바라보는 엄마를 닮아있었다. 다음은 아들의 시선, 혹은 아들을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그는 깨달았다. 엄마는 그가 살았던 동네들을 돌아다닌걸. 하나씩 되살아나는 과거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를 찾는 시선은 이제 아버지에게로 옮겨간다. 살을 맞대고 살았으면서도 잘 몰랐던 그녀에 대한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당신'이라는 지칭어는, 큰딸에게 "부탁헌다…… 니 엄마…… 엄마를 말이다."고 하는 목소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간극을 좁힌다. 이번에는 엄마 자신의 이야기. 둘째 딸을 바라보며, 옛날을 회상하며 누구한테랄 것 없이 얘기를 하는 엄마는 엄마면서, 또한 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그녀가 '엄마'니까 흔히 잊고 사는 사실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지.
 그리고는 다시 큰딸의 목소리로 돌아간다. 그녀가 읽어내려가는 여동생의 편지.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라는 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왜 그리 눈물겹던지. 피에타상을 보고 돌아나오며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흘려버린 한 마디가 자꾸 가슴에 남더라. 흔한 얘기, 뻔한 신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익숙한 것에서 오는 공감, 그리고 그로 인한 새삼스러운 깨달음은 불현듯 나를 돌아보게 한다.

by 玄月 | 2008/11/11 11:10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0)

호모 부커스 / 이권우

 

 시험을 끝내고 돌아와서, 미뤄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얼음집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요 녀석 때문이죠. 어느새 렛츠리뷰 쪽에서 비밀덧글도 달아두었더군요(…) 책을 받은 게 보름도 더 지난 일이니 그럴 수밖에요. 왠지 좀 민망합니다만, 음, 여튼 그린비의 '달인 시리즈'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권이었던 <호모 쿵푸스>가 좋아하는 작가 고미숙씨의 책이었거든요. (조만간 이 시리즈 책 한 권을 더 낼 거라네요. 그것도 기대가 됩니다) 사실 도서평론가라는 지은이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린비에 대한 기대로, 그리고 '책'이라는 주제가 들려줄 또 다른 이야기가 기대되어서 냉큼 신청하게 되었답니다.

오자마자 받아서 사진부터 찍었던 택배. 그린비 블로그는 전부터 외부 링크를 걸어두고 가끔 들어가 본답니다:)
그렇지만 '국어교육과'를 '국어국문학과'로 적어 보내서 좀 마음 아팠어요.
표지부터 맘에 들었던 책. 아래 쪽에는 '드림'이라는 도장도 찍혀있었습니다. 동글동글, 예쁘더라구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풀어놓고 있었지요. 김용석씨와의 이야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분이 제게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냥 놔두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악한 것이고, 애를 써서 해야 겨우 이루어지는 것은 선한 것이라 할 때- 시간을 내야 되고, 무슨 말인지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되며, 때로는 자신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대치하기도 하는 책읽기, 그 책읽기의 괴로움을 돌아보면 '책읽기는 선한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는 말 말입니다. 재밌는 것이 너무도 많은 이 시대, 굳이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을 위안해준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앞 부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고통을 공감하는 상상력'이었습니다. 저자는 "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공감하고 함께하려고 이끄는 책'이 좋은 책이라며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힘을 키우려'고, 답하고 있습니다. 함께 실려있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표지를 볼 때의 그 느낌. 차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더랬죠. 천천히 읽기의 미학은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 싶었습니다.

 남은 부분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요. 재미를 위한 책읽기도 너그러이 보는 작가가 <삼국지>를 읽지 마라고 하는 건 좀 우스웠지만 - 물론 <삼국지>가 가당찮게 '논술 교재'로 많이 팔리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었지만 말예요. 어렸을 적 기억 한 가닥을 <삼국지>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섭섭했달까요. - 나머지 얘기는 새겨 들을만한 구석이 있었지요. 천천히 읽기를 강조한다든가, 깊이 읽기와 겹쳐 읽기를 강조한다든가요. 사실 후자는 딱히 얘기를 하지 않아도 이른바 '책벌레'라면 한번씩 경험해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를테면 한 때 김탁환에 빠져있을 때 보이는 족족 책을 다 사모았던 기억이나, 혹은 <식민지의 적자들>이라는 책 한 권으로 개화기를 다룬 소설과 역사책들, 게다가 문학 비평서들까지 읽어제꼈던 기억들 말입니다. 이와 더불어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도 흥미로웠고요. 각주를 통해 더 넓고 깊게 책을, 그리고 작가를 이해하는 읽기. '이크'라는 감탄사로 대표되는 더 높은 수준의 읽기. 그야말로 '행복한 책읽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지요.

 끝에서는 독후감과 독서 교육, 쓰기 위한 읽기에 대한 글들이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학교 현장으로 나갈 거지만 -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지만 - 아마 현직에 있으신 분들이 보면 경험과 연결지어서 더 깊은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읽고 토론하고 쓰기'라는 대전제에는 공감하지만,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꽤 이견이 보이더군요. 지금은 또 차 시간에 쫓기다보니 이번 주 중으로 다시 트랙백(…)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덧. 요건 같이 왔던 <열하일기> 엽서 중 하나입니다. 18세기, 그야말로 '충격'이었던 유리창.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지만- 부피가 가져다주는 무게감은 이길 수 없지 않을까요:)

렛츠리뷰

by 玄月 | 2008/11/10 12:01 | 행복한 독서 | 트랙백 | 덧글(2)

향가 (7) - 헌화가

 
classic_6.hwp

紫布岩乎邊希           자줏빛 바위 끝에,          자주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吾肹不喩慙肹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하시면,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양주동 해독             - 김완진 해독

 성덕왕(702-737) 때에 순정공이 강릉(지금의 명주) 태수로 부임해 가는 도중이었다. 가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 절벽이 바다에 맞닿았는데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으며, 그 위에는 철쭉꽃이 만발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는 그 꽃을 보고 옆사람들에게
 "저 꽃을 꺾어다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니 모시는 사람들이 모두
 "사람이 발 붙일 곳이 못 됩니다."
하고 난색을 표하며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마침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철쭉꽃을 꺾어 가지고 와서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바쳤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이틀 동안 길을 가다가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순정공은 발을 동동 구르며 땅을 쳐 보았지만 아무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있다가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하였는데 지금 바다 짐승이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당장 이 경내의 백성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며 몽둥이로 언덕을 두드리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순정공이 노인이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용이 바다에서 부인을 데리고 나와 바쳤다.
 순정공은 부인에게 바닷 속의 사정을 물었다. 부인은
 "칠보 궁전에 음식이 달고 부드러우며 향기가 있고 깨끗하여 세상에서 흔히 먹는 익히거나 삶은 음식이 아니더라."
고 하였다. 수로부인의 옷에도 향기가 배어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향기가 아니었다.
 수로부인의 자색과 용모가 절대가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에게 잡히었다. 여럿이 부른 해가의 가사는 이러하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어놓아라
 남의 부녀 약탈한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약 거역하고 내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내어 구워 먹겠다.

 노인이 꽃을 바치며 부른 노래는 이러하다.
-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 수로부

 <헌화가>는 사실 노래 자체는 간단한 편입니다. 물론 어석의 차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 이를테면 철쭉꽃의 빛깔을 두고 '붉은', '짙붉은', '자줏빛' 같은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요. - 해독에 필요한 기본적인 바탕은 마련되어 있지요. 원전비판 문제에 거의 이견이 없으며, 끊어읽기도 마찬가지구요. 그렇다면 4구체 향가의 짧은 내용 속에서 더 이상 논의할 게 없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문맥 속에서 <헌화가>를 읽을 때엔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
 향가는 흔히들 그 배경설화까지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그러지요. 서정시로서의 독자적인 미학이 없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일이지만, 문맥 속에서 파악할 때야 다층적인 의미가 드러난다고요. 그렇게 볼 때 <헌화가>의 배경설화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배경설화는 노인헌화담과 수로부인의 피랍담이 결합되어 있지요. 주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전자입니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牽牛老翁)의 정체입니다. 불교적인 가요라는 입장에서는 소를 찾는(尋牛) 선승으로 보고 있으며, 농경의례와 관련된 농신이나 도교 사상과 관련된 도교적 신선이라고도 하지요. 혹은 생명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 꽃을 바쳤다는 측면에서 신사도의 기백을 가진 노신사로 보아 화랑적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고요. 깊은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평범한 시골 농부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시가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노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선 불교적 수행과 관련된 선승의 노래라고 보는 쪽이 있지요. (그러나 '심우(尋牛)'는 선종에서 나오는 이미지인데, 노래는 33대 성덕왕, 선종의 유입은 42대 흥덕왕 때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 라는 의견도 있답니다.) 또한 초자연적 신이나 신격화된 인물의 노래, 일상적인 인간의 욕망과 관련된 세속적 노래, 토착의 주술·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무속적 노래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서 조금 더 들어가볼까요. 예창해 선생은 수로부인을 접신(接神) 과정을 겪는 여인이라 봅니다. 용이나 노옹은 신격으로, 순정공은 그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유자(선비라고 보시면 되지요)로 파악하여 이 시기 신라사회의 무속 원리와 유교 원리의 대립으로 보고 있습니다. 불교가 들어왔을 때 그러했듯이, 유교 역시도 대립의 과정을 안 거쳤을까 생각해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조동일 선생은 <해가>와 <헌화가>를 동일한 원리에서 보고 있지요. 순정공은 관권의 대리자로, 수로부인은 무당으로, 노인은 민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격으로 설정하여 신라 지배층이 민심 수습책으로 행했을 굿과 관련짓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꽃을 받는 것을 영력(靈力)을 갖기 위한 신병 체험으로 보고 있지요.
 여기현 선생 역시 유사한 관점을 취하고 있습니다. <헌화가>는 꽃거리, <해가>는 용거리와 관련 지어 제물, 그리고 죽음과 재생이라는 내용을 풀어나가지요. 가뭄에 백성을 구제하였다는 내용이 대부분인 성덕왕條가 기이(紀異)편에 수록된 것은 그만큼 가뭄이 심각했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노옹이 끌고 나오는 소는 원래 제물이지만, 암소를 바쳐 제의의 효과를 얻기에는 위기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었다네요. 때문에 가뭄이 들면 왕이 기우제의 희생이 되었던 고대의 전통을 따라 제물의 효력과 제물의 가치를 갖춘 수로부인이 - 본래 지니고 있는 여성 원리로 生生力을 상징하며, 생생력이 극에 달한 붉은 철쭉을 받음으로써 이 힘은 배가되지요 - 대체 제물로 쓰인 것이라고요.
 아마 제의적인 성격과 관련해서 서사문맥을 함께 읽는 것이 전체적인 상을 아우를 수 있는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선(晝饍)'이나 '꽃'의 의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거든요. 보통 보통 일반인의 점심은 '주식', '중화'라고 표현하는 반면 임금의 식사나 제사의 제물을 두고 '주선'이라고 한다는데- 이를 보면 낭떠러지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무사안위를 비는 노래라는 제의적 관점이 힘을 얻습니다. 또한 왜 하필이면 '꽃'이었을까요. 우리 문학사에서 꽃이 연정의 모티브로 쓰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뒤에서 살펴볼 <도솔가>의 경우에도 꽃은 주술적 상관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고려가요에서도 꽃을 꺾어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유독 이 작품에서만 꽃을 연정의 모티브로 해석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성기옥 선생의 견해에 눈길이 가네요. 서사문맥의 비중이 아무리 막중하더라도 관심의 초점이 서사문맥에 집중되어 버리면, 시가 자체의 성격이 모호해진다고 하지요. 시가를 표층적인 수준에서만 살피면 <헌화가>는 명백하게 남성화자가 여인에게 꽃을 꺾어 바치는 구애의 언어 형태이며, 노인 헌화담과 수로부인 피랍담이라는 각각 완결된 두 개의 배경설화는, 일연의 논평을 따라간다면 '수로부인이 절대가인이라서' 일어나는 일이라고요. 물속의 용까지, 천 길 벼랑을 오를 수 있는 비범함을 보이는 노인까지 빠져들게 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의 마력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따라서 <헌화가>는 신화적 인물이 인간(여성)에게 바치는 구애의 노래이며, 이 같은 '인간적 아름다움의 초월성'에서 신라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다네요. 선덕여왕과 지귀처럼 신분적 질곡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惡神(처용의 아내를 탐한 역신)이나 鬼神(도화녀를 찾아간 진지왕)까지 감동시키며 신들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미의식을 말이지요.
 아래에 첨부하는 세 편의 시 역시 이 같은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시에 시인이 덧붙인 말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네요:)

老人獻花歌(노인헌화가)

老人獻花歌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
문득 그의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보고
한바탕 건네인 수작이다.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 밖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었다.

*

騎馬의 남편과 同行者 틈에
여인네도 말을 타고 있었다.

「아이그마니나 꽃도 좋아라
 그것 나 조끔만 가져 봤으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말 위에 갸우뚱 여인네의 하는 말을
남편은 숙맥인 양 듣기만 하고,
同行者들은 또 그냥 귓전으로 흘려 보내고,
오히려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動鈴하고
도맡아서 건네는 수작이었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꽃은 벼랑 위에 있거늘,
그 높이마저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여간한 높낮이도
다아 잊어버렸었다.
한없이
맑은
空氣가
요샛말로 하면 ― 그 空氣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
한없이 親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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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路夫人(수로부인)의 얼굴 - 美人(미인)을 찬양하는 新羅的語法(신라적어법)

水路夫人의 얼굴 - 美人을 찬양하는 新羅的語法

1

암소를 끌고 가던
수염이 흰 할아버지가

그 손의 고삐를
아조 그만 놓아 버리게 할만큼,

소 고삐 놓아 두고
높은 낭떠러지를
다람쥐 새끼 같이 뽀르르르 기어오르게 할만큼,

기어 올라 가서
진달래 꽃 꺾어다가

노래 한 수 지어 불러
갖다 바치게 할만큼,

2

亭子에서 點心먹고 있는것
엿 보고
바닷속에서 龍이란 놈이 나와
가로 채 업고
천길 물속 깊이 들어가 버리게 할만큼,

3

왼 고을안 사내가
모두 몽둥이를 휘두르고 아노게 할만큼,
왼 고을안 사내들의 몽둥이란 몽둥이가
한꺼번에 바닷가 언덕을 아푸게 치게 할만큼,

왼 고을안의 말씀이란 말씀이
모조리 한꺼번에 몰려 나오게 할만큼,

「내놓아라
 내놓아라
 우리 水路
 내놓아라」
여럿의 말씀은 무쇠도 녹인다고
물 속 천리를 뚫고
바다 밑바닥까지 닿아가게 할만큼,

4

업어 간 龍도 독차지는 못하고
되업어다 江陵 땅에 내놓아야 할만큼,
안장 좋은 거북이 등에
되업어다 내놓아야 할만큼,

그래서
그 몸둥이에서는
왼갖 용궁 향내 까지가
골고루 다 풍기어 나왔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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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路夫人(수로부인)은 얼마나 이뻤는가?

水路夫人은 얼마나 이뻤는가?

그네가 봄날에 나그네길을 가고 있노라면,
天地의 수컷들을 모조리 惱殺하는
그 美의 瑞氣는
하늘 한복판 깊숙이까지 뻗쳐,
거기서 노는 젊은 神仙들은 물론,
솔 그늘에 바둑 두던 늙은 神仙까지가
그 引力에 끌려 땅 위로 불거져 나와
끌고 온 검은 소니 뭐니
다 어디다 놓아 두어 뻐리고
철쭉꽃이나 한 가지 꺾어 들고 덤비며
청을 다해 노래 노래 부르고 있었네.
또 그네가 만일
바닷가의 어느 亭子에서
도시락이나 먹고 앉었을라치면,
쇠붙이를 빨라들이는 磁石 같은 그 美의 引力은
千 길 바다 속까지 뚫고 가 뻗쳐,
징글 징글한 龍王이란 놈까지가
큰 쇠기둥 끌려 나오듯
海面으로 이끌려 나와
이판사판 그네를 둘쳐업고
물 속으로 깊이 깊이 깊이
잠겨 버리기라도 해야만 했었네.

그리하여
그네를 잃은 모든 山野의 男丁네들은
저마다 큰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나와서
바다에 잠긴 그 아름다움 기어코 다시 뺏어 내려고
海岸線이란 海岸線은 모조리 모조리 亂打해 대며
갖은 暴力의 데모를 다 벌이고 있었네.
- 『三國遺事』第二卷, 「水路夫人」條.

 * 統一新羅의 聖德王 때의 이 美女 水路는 可謂 <傾天·傾海·傾國之色>까지가 되는 것이니, 중국에서 옛부터 王昭君이니 西施니 趙飛燕이니 楊貴妃니 하는 미녀를 보고 <傾國之色>이라고 홑으로 표현해 온 따위는 우리 水路의 美의 표현의 발꿈치에도 감히 따르지 못할 일이었던 것만 같도다.
 그리고 『三國遺事』나 그 밖의 옛 역사책에서 이런 류의 이얘기들을 읽는 학생들에게 특히 간절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龍이 바다 속으로 업고 들어갔으면 어떻게 살아 남지? 그러니 이런 건 현대와는 관계가 있을 수 없는 케케묵은 엣날 이얘길 뿐이란 말이야.」 어쩌고 해 버리지 말고, 「일테면 그럴 만큼 이뻤었다.」는 上代 隱喩의 은근한 맛을 이해해 맛보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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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구체 향가가 이렇게 길게 갈 줄이야… 그래도 예쁘면 다 용서가 됩니다(?!)
 +) 거북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영문도 모르게 머리를 내놓으라지 않나, 용이 데려간 수로부인을 찾아오라지 않나, 툭하면 뭘 내 놓으라고 그러니 말이죠^^;

by 玄月 | 2008/11/03 18:33 | 맛있는 공부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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